박성진 선수 은퇴할 당시에도 그렇고, 김원민 선수가 화성FC로 팀을 옮길 때도 그렇고, 따라왔던 단어가 있습니다. '원클럽맨' 이라는 단어입니다.
저는 과연 박성진 선수가 안양의 원클럽맨이라고 할 수 있는지, 김원민 선수가 화성FC로 팀을 옮기지 않았다면 안양의 원클럽맨이라고 할 수 있었을지 의구심이 듭니다.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는 북패나 1995가 안양을 '흡패' 라고 표현하는 것에 굉장히 불쾌감을 표합니다. 그들은 FC안양이 고양 KB의 연고 이전이라고 주장하지만, 여러 증거들이 뒷받침해주듯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고양 KB와 FC안양은 별개의 역사를 가진 별개의 팀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고양 KB와 FC안양이 관계가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적어도 고양 KB와 FC안양은 같은 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군생활을 제외한 커리어를 고양 KB와 FC안양에서만 보낸 박성진 선수를 과연 원클럽맨이라고 말하는게 옳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양 KB와 FC안양은 같은 팀이 아닌데 이 두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한 선수는 원클럽맨이다? 완벽한 모순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고양 KB는 프로팀이 아니므로 원클럽맨이라는 기준에서 제외해야한다.' 라고 주장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주장은 김원민 선수의 사례에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김원민 선수가 떠날 때 여기 레드플레임에서도 원클럽맨이라는게 쉽지 않다라는 의견이 있었으니, 비(非)프로팀으로 이적한 김원민 선수도 이 얘기대로면 프로 생활을 안양에서만 했으니 원클럽맨이라고 해야합니다. (사실 이 의견도 말이 안되는게 고양 KB와 FC안양을 한 팀으로 본다고 치더라도 이미 김원민 선수는 김해시청에서 뛴 바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창단 멤버인 염호덕 선수도 원클럽맨일거고요.
원클럽맨은 '한 클럽에서만 뛴 선수'를 원클럽맨이라고 합니다. (군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팀을 갔다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요.) 당장 안양에서 뛰는 선수로는 이상용, 정민기 선수처럼 오직 안양에서만 뛴 선수를 원클럽맨이라고 할 수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진 선수, 김원민 선수, 모두 팀의 레전드임에 틀림 없습니다만, '원클럽맨'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어떻게든 우리를 까고 싶어 안달나서 흡패흡패거리는 북패들이나 1995들을 욕할 자격이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시고 의견을 남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데뷔'는 첫등장, , 첫무대를 의미 하지요.
K리그 데뷔라는 표현은 결국 리그의 차별화,
아마츄어리그의 기록과의 연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관계자들의 증명 아닐까요.
저는 그 기준을 신인선수상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 2009년 내셔널리그 득점왕 출신인 김영후가 신인왕에 등극하자, 중고신인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내셔널리그 신인왕 1회, MVP 1회, 득점왕 2회를 차지한 26세의 선수라 할지라도
프로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신인선수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갔다.
그러나 정광석, 노상래, 박건하 등 기존의 실업 축구단 출신 신인왕 선례가 많았기 때문에
이 논란은 이내 흐지부지되었다.]
K리그는 아마츄어리그의 기록에 연속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사례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우리는 K리그 소속의 프로 축구클럽이며 모든 기록의 적용은 K리그의 룰에 따르면 됩니다.
박성진 선수는 프로리그 데뷔를 FC안양에서 했고, 그 커리어를 FC안양에서 끝냈습니다.
그러니 원클럽맨 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리고 원클럽맨으로서의 자격에는 '끝'이라는 더 큰 의미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진 선수와 김원민 선수의 차이가 바로 이 '끝'에 있다고 봅니다.
원민 선수는 하부리그 혹은 아마츄어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연장'하고 있으니
여전히 '선수'로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것이고
성진 선수는 FC안양에서 '끝'을 내었고 선수로서의 커리어가 끝난 상황입니다.
너와나의안양님께서는
"원클럽맨은 '한 클럽에서만 뛴 선수'를 원클럽맨이라고 합니다.
라고 하셨는데
원클럽맨은 '한 클럽에서 데뷔하고 은퇴한 선수'라고
저는 정의 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고,
저 역시 예전 글에서 '원클럽맨'의 역사가 그리 쉬운게 아니다.라고 했듯이
각자의 해석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